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에 대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영화로 시기는 1987에 발생한 사건 입니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정권 말기일때 경찰이 서울대학교의 언어학과의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하게 됩니다. 그 후에 고문을 하다가 사망하게 만드는데요. 이 사건이 공안당국의 조직적인 은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진상이 폭로되면서 1987년 6월항쟁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두환정권에서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이 1980년대의 중 후반에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과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서 그 후배인 박종철을 불법으로 체포하게 된 것입니다.

 

 

경찰이 박종철을 불법 체포한 후에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으며, 박종철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의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의 509호 조사실에서 끝내 사망을 했습니다. 같은 달 15일에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하게 되며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는데 방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에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려졌다. 중앙대 부속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며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부검의 증언과 언론의 보도 등으로 의혹등이 제기가 되자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으로 시인했습니다. 수가경관 조한경과 강진규는 구속 되었으며 정부는 내무부장관인 김종호와 치안본부장인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근절 대책의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습니다.

 

 

1987년 5월 18일에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해 결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습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사건을 축소 조작하였으며 고문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는 사실 또한 폭로되었습니다.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과 청와대 비서실 및 이들 기관에서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는 은폐 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의 은폐 조작사건이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서 큰 타격을 주었으며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이 사건이 1987년 6월인  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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